빈혈이라는데, 철분제만 사다 드리면 될까요
검진 결과지에 혈색소 10.8이 찍혀 왔습니다. 약국에서 철분제를 사다 드리면 될 것 같은데, 어르신 빈혈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백 년 전 간을 먹고 살아난 환자들 이야기부터, 철분제를 드리기 전에 확인할 것까지 정리했습니다.
입소 상담을 마칠 무렵, 따님 한 분이 가방에서 건강검진 결과지를 꺼내셨습니다.
"어머니 혈색소가 10.8이라고 빈혈이래요. 요즘 기운도 없으시고 자꾸 어지럽다고 하세요. 약국에서 철분제 사다 드리면 되는 거죠? 요양원에 들어가시면 그것도 챙겨 주시나요?"
철분제는 물론 챙겨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받으면 먼저 여쭤보는 것이 있습니다. 빈혈이 왜 생겼는지 병원에서 들으신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그냥 빈혈이라고만 하던데요"라고 답하십니다. 젊은 여성의 빈혈은 대개 철분 부족이라 철분제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든 가까운 어르신의 빈혈은 원인이 여러 갈래입니다. 철분이 원인이 아닌 경우도 많고, 철분이 원인이라면 그 철분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를 따로 찾아야 합니다.

간을 먹고 살아난 환자들은 어떤 빈혈이었을까요?
1849년 런던 가이 병원의 의사 토머스 애디슨은 이상한 빈혈 환자들을 기록했습니다.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고, 눈의 흰자가 진줏빛을 띠고, 몸에 힘이 빠지고 어지러워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떤 치료도 듣지 않았고, 돌아가신 뒤 몸을 살펴봐도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원인을 모르는 빈혈」이라고 불렀습니다. 20여 년 뒤 독일 의사가 여기에 「악성 빈혈」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고칠 수 없고 결국 죽는 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병은 저절로 좋아지는 때가 있었습니다. 환자도 가족도 거기에 기대를 걸었지만, 좋아졌다가도 다시 나빠졌고 결국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국 보스턴의 의사 조지 마이넛과 윌리엄 머피는 1926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병을 앓는 환자 45명에게 특별한 식단을 드린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하루에 익힌 송아지 간이나 소 간을 120~240g씩 드시게 하고, 고기와 채소와 과일을 함께 드렸습니다. 환자들은 처음 1주일은 입맛이 없어 하루 1,000kcal도 못 드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2주가 안 되어 배가 고프다며 간과 고기를 더 달라고 했다고 논문에 적혀 있습니다. 논문에 적힌 평균값을 보면, 식단을 시작하고 4~6주 뒤 적혈구 수가 시작 전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마이넛 자신도 환자였습니다. 1921년 심한 당뇨 진단을 받았는데, 그 무렵 막 나온 인슐린 덕분에 살아남아 이 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마이넛이 간을 떠올린 데는 조지 휘플이라는 학자의 개 실험이 영향을 줬습니다. 휘플은 개의 피를 뽑아 빈혈을 만든 뒤 무엇을 먹여야 피가 빨리 회복되는지 봤고, 간이 좋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피를 잃어서 생긴 빈혈은 철분이 빠져나간 빈혈입니다. 악성 빈혈과는 원인이 전혀 다릅니다. 마이넛도 1926년 논문에서 이 식단을 「단백질과 철분이 풍부한 식단」이라고 설명하면서, 효과는 철분보다 단백질 쪽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마이넛과 휘플은 1934년 머피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는데, 그때까지도 간 속의 무엇이 악성 빈혈을 낫게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간을 매일 수백 그램씩 드시기는 어려웠습니다. 곧 간에서 성분을 뽑아낸 약이 나왔습니다.

자기가 먹은 고기를 게워 낸 의사는 무엇을 알아냈을까요?
마이넛의 강연을 들으러 가던 젊은 의사 윌리엄 캐슬은 이런 의문을 품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간을 따로 먹지 않아도 피가 멀쩡한데, 왜 이 환자들은 간을 그렇게 많이 먹어야 할까. 이 환자들의 위에서 위산과 위액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캐슬은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위가 문제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캐슬은 직접 실험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빈속에 날 쇠고기 300g을 먹고, 1시간 뒤 목구멍을 자극해 스스로 게워 냈습니다. 자기 위액과 섞인 그 고기를 걸러서 관으로 환자의 위에 넣었습니다. 쇠고기만 드렸을 때도, 건강한 사람의 위액만 드렸을 때도 반응이 없던 환자가, 둘을 섞어 드리자 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음식 속의 어떤 성분이 건강한 위에서 나오는 물질과 만나야 효과가 난다는 뜻이었습니다. 나중에 이것이 흡수의 문제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 음식 속 성분이 비타민 B12이고, 1948년에 와서야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역사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이야기를 길게 꺼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빈혈에는 철분이 모자란 빈혈과 철분과는 상관없는 빈혈이 있고, 겉으로는 둘 다 창백하고 기운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B12처럼 음식으로 충분히 드셔도 몸이 흡수를 못 해서 모자라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바로 어르신들에게 흔하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위벽이 얇아지고 위산이 줄어서 음식 속의 B12를 떼어 내 흡수하는 힘이 약해집니다. 2004년 캐나다 의학협회지에 실린 프랑스 연구진의 종설은 어르신 B12 결핍이 20%가 넘을 만큼 흔한데 증상이 미묘해 자주 놓친다고 했습니다. 위산을 줄이는 약을 2년 넘게 드신 분이나 당뇨약 메트포르민을 오래 드신 분도 B12가 낮아지기 쉽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이런 약을 드시는 어르신이라면 빈혈 검사 때 B12 수치도 같이 봐 달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어르신 혈색소는 몇이면 빈혈인가요?
빈혈은 피 속의 혈색소(헤모글로빈)가 기준보다 낮은 상태를 말합니다. 세계보건기구 기준으로 성인 남성은 13 g/dL 미만, 임신하지 않은 성인 여성은 12 g/dL 미만이면 빈혈입니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가 2024년에 낸 새 지침은 이 기준을 15세에서 65세까지 성인에게 적용한다고 적었습니다. 65세 넘은 어르신의 기준은 따로 정하지 못하고,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로 남겨 두었습니다.
헷갈리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국가건강검진 결과지는 세계보건기구 기준과 다른 구간을 씁니다. 보건복지부 고시 「건강검진 실시기준」에 따른 혈색소 판정은 이렇습니다.
| 구분 | 정상A | 정상B(경계) | 질환의심 |
|---|---|---|---|
| 남성 | 13.0~16.5 | 12.0~12.9 | 12.0 미만 |
| 여성 | 12.0~15.5 | 10.0~11.9 | 10.0 미만 |
그래서 어머니 혈색소가 10.8이면 검진 결과지에는 「정상B(경계)」로 나오지만, 세계보건기구의 성인 기준(여성 12 미만)을 대 보면 빈혈에 해당합니다. 결과지에 「질환의심」이 안 떴다고 넘기지 마시고, 수치를 직접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어르신 빈혈은 얼마나 흔한가요?
꽤 흔합니다. 국민건강영양조사 2007~2016년 자료를 분석한 국내 연구에서 65세 이상 어르신의 빈혈 유병률은 14.0%였습니다. 85세가 넘으면 남성 26.6%, 여성 22.5%로 넷 중 한 명꼴이었고, 이 나이에서는 남녀 차이가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서 2025년 철결핍빈혈로 진료받은 사람은 34만 5천여 명이었습니다. 80세 이상만 남녀를 더해 3만 4천여 명이었습니다. 요양시설에 계신 어르신은 빈혈이 더 많습니다. 영국소화기학회 지침은 요양시설 입소자의 절반 넘게 빈혈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철분 부족이 아닌 빈혈도 많은가요?
많습니다. 2004년 미국에서 65세 이상 어르신의 빈혈 원인을 나눠 본 연구가 있습니다. 철분·비타민 B12·엽산 같은 영양이 모자란 경우가 약 3분의 1이었고, 그중 철분 부족은 절반 정도였습니다. 영국소화기학회 지침은 어르신 빈혈의 약 절반에 철분 부족이 관여한다고 봤으니, 철분이 중요한 원인인 것은 맞습니다. 다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른 3분의 1은 만성 염증이나 콩팥병 때문이었고, 나머지 3분의 1은 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콩팥이 약해지면 피를 만들라고 골수에 보내는 호르몬이 줄어듭니다. 국제 신장학 지침(KDIGO 2026)은 콩팥 기능이 많이 떨어진 환자의 절반 넘게 빈혈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이런 빈혈은 철분만으로는 다 낫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콩팥 쪽 치료를 함께 받아야 할 수 있습니다. 어르신이 철분제를 몇 달째 드시는데 수치가 그대로라면, 철분이 원인이 아닐 가능성을 의사와 이야기해 보셔야 합니다.
철분이 모자라면 왜 위·대장 검사 이야기가 나오나요?
어르신의 철분 부족은 식사가 부실하거나, 흡수가 떨어지거나, 드시는 약이나 만성 질환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몸 어딘가에서 피가 조금씩 새고 있을 수도 있어서, 그 가능성은 꼭 확인해야 합니다. 영국소화기학회가 2021년에 낸 철결핍빈혈 지침을 보면, 철결핍빈혈이 있는 남성과 폐경이 지난 여성은 약 3분의 1에서 원인이 되는 병이 발견됩니다. 그중에서는 위와 장에 생긴 병이 가장 흔하다고 적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철결핍빈혈을 진단받았는데 다른 원인이 뚜렷하지 않으면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권합니다.

아스피린, 피를 묽게 하는 약, 소염진통제를 드시는 어르신은 위장에서 피가 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같은 지침은 이런 약을 드신다고 해서 검사를 건너뛰어도 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몸이 많이 약하시거나 다른 병이 무거운 어르신은 내시경이 부담이 될 수 있어서, 검사로 얻는 것과 잃는 것을 가족과 함께 따져 보라고 했습니다. 검사를 할지 말지는 보호자가 의사와 상의해서 정할 일입니다. 다만 철분제만 드리고 원인을 묻지 않은 채 몇 년이 지나는 것은 피하셔야 합니다.
철분제는 얼마나, 어떻게 드려야 하나요?
철분제는 많이 드린다고 더 좋은 약이 아닙니다. 2005년 이스라엘에서 80세 넘은 철결핍빈혈 입원 환자 90명을 대상으로 원소철 하루 15mg, 50mg, 150mg을 60일 동안 드리고 비교한 연구가 있습니다. 혈색소는 세 그룹 모두 비슷하게 올랐습니다. 15mg 그룹은 10.0에서 11.3으로, 150mg 그룹은 10.2에서 11.6으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배가 불편하거나, 메스껍거나, 변이 바뀌거나, 검은 변을 보는 일은 양이 많을수록 늘었습니다.

영국소화기학회 지침도 처음에는 하루 한 알로 시작하고, 속이 불편해 견디기 어려우시면 이틀에 한 알로 바꾸거나 다른 제형이나 주사를 생각해 보라고 권합니다.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이틀에 한 번 드셨을 때 흡수가 오히려 더 잘됐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다만 어르신에게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철분제를 드시면 변이 까맣게 나올 수 있습니다. 철분 때문에 생기는 흔한 변화라서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위장 출혈이 있을 때도 변이 까맣게 나오기 때문에, 끈적하고 냄새가 심한 검은 변이 나오거나 어지러움이 심해지면 바로 진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변비도 흔한 부작용입니다.

함께 드시는 약도 봐야 합니다. 갑상선 호르몬제는 칼슘제와 최소 4시간 간격을 두라고 허가사항에 적혀 있고, 철분제와 알루미늄이 든 제산제도 간격을 두고 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갑상선 약을 드시는 어르신이라면 갑상선기능저하증 이야기에 복용 시간을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칼슘제도 철분 흡수를 방해하니 시간을 떼어 드리는 편이 좋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처방한 의사나 약사와 정하십시오.
빈혈을 그냥 두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빈혈이 가벼워 보여도, 빈혈이 있는 어르신이 더 자주 넘어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65~88세 어르신 394명을 3년 동안 지켜본 연구가 있습니다. 6개월 안에 두 번 이상 넘어진 일이 있었던 어르신이 빈혈이 있던 쪽은 38.3%, 없던 쪽은 19.6%였습니다. 미국에서 2,552명을 11년 동안 지켜본 다른 연구에서는 빈혈이 있던 어르신에게 치매가 더 많이 생겼습니다. 두 연구 모두 지켜보기만 한 연구라서 빈혈이 직접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기운 없고 어지러워하시는 것을 나이 탓으로만 넘기지 않을 이유는 됩니다.

Q. 어르신 빈혈이면 약국에서 철분제를 사다 드려도 되나요?
드리기 전에 빈혈의 원인부터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어르신 빈혈은 철분 부족, 비타민 B12나 엽산 부족, 콩팥병이나 만성 염증, 원인 불명이 섞여 있어서 철분제가 듣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철분 부족이 맞다면 위나 대장에서 피가 새고 있는지를 의사와 함께 확인하셔야 합니다. 한 연구에서 80세 넘은 입원 어르신은 철분을 적게 드셔도 효과가 비슷했고 부작용은 더 적었습니다. 많이 드린다고 더 좋은 게 아니니, 처방받은 양을 지키시면 됩니다.
Q. 빈혈이 있는 어르신이라면, 어느 요양원에 전화하든 무엇을 물어보면 좋을까요?
- 혈색소 피검사를 얼마마다, 어느 병원에서 하게 되는지 물어보십시오.
- 철분제를 갑상선 약·칼슘제와 시간을 떼어 드리는지 확인하십시오.
- 검은 변이나 변비가 생기면 누가 기록하고 언제 보호자에게 알리는지 물어보십시오.
- 어지러워하시거나 기운이 없으실 때 낙상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십시오.
- 계약의사 진료 때 빈혈 원인이나 약 용량을 같이 살펴보는지 확인하십시오.
저희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요양원에서 빈혈은 한 번에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철분제를 다른 약과 시간을 떼어 드려야 하고, 변 색깔과 변비를 매일 살펴야 하고, 어지러워하시는 날은 일어서실 때 곁에 있어야 합니다. 부추꽃더클래식 너싱홈은 간호 인력을 법정 기준보다 넉넉하게 두고 있어서 이런 일을 서두르지 않고 챙길 수 있습니다. 빈혈처럼 꾸준히 지켜봐야 하는 어르신이 어떤 돌봄을 받으시는지는 전문요양실 서비스 범위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하실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부모님 검진 결과지에서 혈색소 숫자를 직접 찾아보시는 것, 그리고 빈혈이라는 말을 들으셨다면 다음 진료 때 "빈혈 원인이 뭔지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여쭤보시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창백해 보이고 기운이 없으시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뭐라도 드시게 해야 할 것 같아서 철분제부터 사게 됩니다. 그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백 년 전 의사들도 간이 왜 듣는지 모른 채 간을 먹였습니다. 캐슬이 그 이유를 위에서 찾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습니다. 어르신 빈혈도 원인을 한 번 확인해 두시면, 철분제를 드릴지 다른 치료를 받으실지 정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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