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실까 봐 피 묽게 하는 약을 끊어도 될까요

아버지가 요즘 자주 휘청이십니다. 심방세동으로 피를 묽게 하는 약을 드시는데, 넘어져서 피가 안 멈추면 어떡하나 싶어 약을 끊고 싶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백 년 전 피가 멈추지 않던 소들 이야기부터, 그 약을 끊기 전에 꼭 알아 두실 것까지 정리했습니다.

입소 상담 자리에서 아드님 한 분이 약 봉투를 꺼내 놓으셨습니다. 봉투 안에는 아버님이 아침저녁으로 드시는 약이 들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와파린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심방세동이 있으셔서 피를 묽게 하는 약을 드세요. 그런데 요즘 다리에 힘이 빠지셔서 자주 휘청이세요. 지난달에는 화장실 앞에서 주저앉으셨고요. 넘어지시다가 머리라도 부딪히면 피가 안 멈출 것 같아서, 차라리 이 약을 끊으시는 게 낫지 않나 싶습니다."

그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피가 잘 안 굳게 하는 약을 드시는 분이 넘어지면 정말로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끊으셔도 됩니다"라고도, "절대 안 됩니다"라고도 말씀드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약이 어디서 왔고, 넘어질 위험이 있는 어르신에게 어떻게 쓰이는지 찾아봤습니다.

와파린 알약입니다. 함량에 따라 색이 다르게 만들어져 있어서, 드시는 알약 색이 바뀌면 함량이 바뀐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사진: Gonegonegone, CC BY-SA 3.0, 위키미디어 공용)
와파린 알약입니다. 함량에 따라 색이 다르게 만들어져 있어서, 드시는 알약 색이 바뀌면 함량이 바뀐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사진: Gonegonegone, CC BY-SA 3.0, 위키미디어 공용)

피가 멈추지 않던 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1920년대 북미 대평원의 소 농가에 이상한 병이 돌았습니다. 뿔을 자르거나 거세를 한 소가 피를 멈추지 못하고 죽었고, 겉으로 상처가 없는 소도 몸 안에서 피가 새어 쓰러졌습니다. 캐나다 온타리오 수의대의 수의병리학자 프랭크 스코필드는 이 소들이 공통으로 먹은 것을 찾아냈습니다. 습기를 먹어 상한 스위트클로버 건초였습니다. 몇 해 뒤 노스다코타의 리 로더릭은 이 병에 걸린 소의 피에서 피를 굳히는 성분 하나가 제 일을 못 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스위트클로버(흰전동싸리)입니다. 북미에서는 소 먹이로 널리 길렀고, 잘 마르지 않은 채 쌓아 두면 상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진: AnRo0002, CC0, 위키미디어 공용)
스위트클로버(흰전동싸리)입니다. 북미에서는 소 먹이로 널리 길렀고, 잘 마르지 않은 채 쌓아 두면 상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진: AnRo0002, CC0, 위키미디어 공용)

그래도 농부들에게는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대공황이 시작된 때라 상한 건초를 버리고 새로 사기가 어려웠습니다. 1933년 2월, 눈보라가 치던 어느 토요일에 위스콘신 디어파크의 농부 에드 칼슨이 트럭에 죽은 암소 한 마리와 굳지 않은 피가 담긴 통, 상한 스위트클로버 건초 약 45kg을 싣고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수의사 사무실이 닫혀 있어서 그는 위스콘신대 캠퍼스의 한 건물로 들어갔고, 거기서 화학자 칼 폴 링크를 만났습니다.

위스콘신의 낙농 농가 헛간입니다. 칼슨 같은 농부들은 이런 헛간에 겨우내 소에게 먹일 건초를 쌓아 두었습니다 (사진: Corey Coyle, CC BY 3.0, 위키미디어 공용)
위스콘신의 낙농 농가 헛간입니다. 칼슨 같은 농부들은 이런 헛간에 겨우내 소에게 먹일 건초를 쌓아 두었습니다 (사진: Corey Coyle, CC BY 3.0, 위키미디어 공용)

링크가 그날 해 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 건초를 더 먹이지 말고, 아픈 소에게는 다른 소의 피를 수혈해 보라는 정도였습니다. 그 뒤로 링크의 연구실은 상한 건초에서 피를 안 굳게 하는 물질을 찾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1939년 6월, 그의 학생 해럴드 캠벨이 그 물질의 결정 6mg을 얻었습니다. 칼슨이 다녀간 지 6년이 넘어서였습니다. 이 물질은 디쿠마롤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1941년 미국 메이요 클리닉에서 사람에게 처음 쓴 결과가 보고됐습니다.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의 옛 농화학관입니다. 링크가 속했던 학과가 쓰던 건물로, 지금 입구에는 생화학과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진: James Steakley, CC BY-SA 3.0, 위키미디어 공용)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의 옛 농화학관입니다. 링크가 속했던 학과가 쓰던 건물로, 지금 입구에는 생화학과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진: James Steakley, CC BY-SA 3.0, 위키미디어 공용)
링크가 디쿠마롤을 분리할 때 쓴 1940년 무렵의 미량 연소 분석 장치입니다. 지금은 위스콘신 역사박물관에 있습니다 (사진: Daderot, CC0, 위키미디어 공용)
링크가 디쿠마롤을 분리할 때 쓴 1940년 무렵의 미량 연소 분석 장치입니다. 지금은 위스콘신 역사박물관에 있습니다 (사진: Daderot, CC0, 위키미디어 공용)

쥐약으로 팔리던 약이 어떻게 대통령의 약이 되었을까요?

링크의 연구실은 디쿠마롤을 바탕으로 더 센 물질을 여러 개 만들었습니다. 그중 하나에 연구비를 대던 위스콘신 동문 연구재단(WARF)의 머리글자를 따서 와파린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1948년 쥐약으로 내놓았습니다. 쥐가 며칠에 걸쳐 조금씩 먹으면 몸 안에서 피가 새어 죽는 약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너무 위험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생각이 바뀐 것은 1951년 4월이었습니다. 입대를 앞둔 스물두 살 청년이 닷새 동안 와파린 쥐약을 여러 번 먹고도 죽지 않자, 4월 4일 미국 필라델피아의 해군병원을 찾아왔습니다. 의료진은 수혈을 하고 비타민K를 주사했고, 청년은 회복했습니다. 이 일은 1952년 미국의학협회지에 보고됐습니다. 와파린을 많이 먹어도 비타민K를 주면 효과를 되돌릴 수 있다는 걸 사람에게서 처음 확인한 셈입니다. 1954년 와파린은 사람에게 쓰는 약으로 허가를 받았습니다.

오늘날의 쿠마딘(와파린) 약병입니다. 와파린은 1954년 사람에게 쓰는 약으로 허가를 받은 뒤 쿠마딘이라는 이름으로 팔렸습니다 (사진: 미국 국립보건원 NIGMS, 퍼블릭 도메인)
오늘날의 쿠마딘(와파린) 약병입니다. 와파린은 1954년 사람에게 쓰는 약으로 허가를 받은 뒤 쿠마딘이라는 이름으로 팔렸습니다 (사진: 미국 국립보건원 NIGMS, 퍼블릭 도메인)

1955년 9월 24일 새벽,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덴버의 처가에서 가슴 통증을 느꼈습니다. 심근경색이었고, 그는 덴버 근처의 피츠시먼스 육군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당시 백악관은 대통령이 디쿠마롤 계열의 항응고제를 맞고 있다고만 발표했습니다. 그 약이 와파린이었다는 건, 링크가 나중에 그 병원 쪽 사람한테 직접 들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맞았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쥐약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던 이 약을 의사들이 훨씬 덜 꺼리게 됐다고 합니다.

아이젠하워가 쓰러지고 닷새 뒤인 1955년 9월 29일, 대통령 곁에서 일하던 사람이 쓰러지기 전 며칠을 적어 둔 기록입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아이젠하워가 쓰러지고 닷새 뒤인 1955년 9월 29일, 대통령 곁에서 일하던 사람이 쓰러지기 전 며칠을 적어 둔 기록입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1955년 11월 9~10일 무렵, 피츠시먼스 육군병원에서 퇴원을 앞둔 아이젠하워 대통령(가운데 앉은 사람)과 의료진입니다 (미 육군 의무감실, 퍼블릭 도메인)
1955년 11월 9~10일 무렵, 피츠시먼스 육군병원에서 퇴원을 앞둔 아이젠하워 대통령(가운데 앉은 사람)과 의료진입니다 (미 육군 의무감실, 퍼블릭 도메인)

그 소들 때문에 찾아낸 약을 지금은 우리나라 어르신들도 많이 드십니다. 소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상담실의 아드님이 정말 궁금해하신 건 아버님이 왜 이 약을 드시는지, 그리고 넘어질 위험이 있어도 계속 드셔야 하는지였습니다.

심방세동은 어떤 병이고, 왜 피를 묽게 하는 약을 드시나요?

심장은 위쪽 방 두 개(심방)와 아래쪽 방 두 개(심실)로 되어 있습니다. 정상일 때는 심방이 먼저 오므라들어 피를 심실로 보내고, 이어서 심실이 온몸으로 피를 내보냅니다. 심방세동은 심방이 이렇게 한 번씩 힘 있게 오므라들지 못하고 1분에 수백 번씩 가늘게 떨기만 하는 병입니다. 그래서 맥이 불규칙하게 뜁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숨이 차다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아무 느낌이 없어 검진 심전도에서 처음 알게 되는 어르신도 많습니다.

심장 오른쪽(심방과 심실)을 열어 안쪽을 그린 그림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것이 심장 위쪽의 방인 심방으로, 심방세동이 생기면 이 방이 제대로 오므라들지 못하고 떨기만 합니다 (그레이 해부학 1918년판, 퍼블릭 도메인)
심장 오른쪽(심방과 심실)을 열어 안쪽을 그린 그림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것이 심장 위쪽의 방인 심방으로, 심방세동이 생기면 이 방이 제대로 오므라들지 못하고 떨기만 합니다 (그레이 해부학 1918년판, 퍼블릭 도메인)
심방세동 환자의 심전도입니다. 높이 솟은 파형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 보입니다 (사진: Ewingdo,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심방세동 환자의 심전도입니다. 높이 솟은 파형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 보입니다 (사진: Ewingdo,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정작 걱정해야 할 건 맥이 고르지 않은 것보다 심방 안에 피가 고이는 일입니다. 심방이 떨기만 하면 피가 시원하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특히 왼쪽 심방 귀퉁이에 고여 덩어리(혈전)가 생기기 쉽습니다. 이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 피를 타고 뇌혈관을 막으면 뇌졸중이 됩니다. 이렇게 생긴 뇌졸중은 큰 혈관을 막는 경우가 많아 후유증이 크게 남기 쉽습니다. 피를 묽게 하는 약은 이 덩어리가 생기지 않게 하려고 드시는 겁니다. 정확히는 피가 굳는 걸 늦추는 약이라 항응고제라고 부릅니다.

혈관 속에 생긴 핏덩어리(혈전)를 그린 19세기 의학 도판입니다. 심방세동 환자의 심장에서도 이런 덩어리가 생겨 떨어져 나가면 뇌혈관을 막을 수 있습니다 (웰컴 컬렉션, CC BY 4.0)
혈관 속에 생긴 핏덩어리(혈전)를 그린 19세기 의학 도판입니다. 심방세동 환자의 심장에서도 이런 덩어리가 생겨 떨어져 나가면 뇌혈관을 막을 수 있습니다 (웰컴 컬렉션, CC BY 4.0)

심방세동이 있으면 뇌졸중이 얼마나 많아지나요?

미국 프레이밍햄 연구는 주민 5,070명을 34년 동안 추적했습니다. 1991년 발표된 결과를 보면, 심방세동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뇌졸중이 약 5배 많았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심방세동 때문에 생기는 뇌졸중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50대 뇌졸중 가운데 심방세동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은 1.5%였는데, 80대에서는 23.5%였습니다. 80대에서는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심부전 가운데 뇌졸중 위험을 따로 높인 것이 심방세동 하나뿐이었습니다.

80대 뇌졸중 네 건 중 한 건 가까이는 심방세동 탓이었습니다 (자료: Wolf 외, Stroke 1991, 프레이밍햄 연구)
80대 뇌졸중 네 건 중 한 건 가까이는 심방세동 탓이었습니다 (자료: Wolf 외, Stroke 1991, 프레이밍햄 연구)

우리나라에 심방세동이 있는 어르신은 얼마나 되나요?

대한부정맥학회가 건강보험공단 자료로 정리한 2024년 보고서를 보면, 20세 이상 성인의 심방세동 유병률은 2013년 1.1%에서 2022년 2.2%로 두 배가 됐습니다. 2022년 한 해 심방세동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94만 63명이었습니다. 60세 이상만 보면 같은 기간 3.9%에서 약 5.7%로 늘었습니다. 80세 이상에서 새로 심방세동 진단을 받는 사람은 2022년 기준 1년에 10만 명당 1,903명이었습니다.

성인 심방세동 유병률은 9년 사이 두 배가 됐습니다 (자료: Lee SR 외, Atrial fibrillation fact sheet in Korea 2024)
성인 심방세동 유병률은 9년 사이 두 배가 됐습니다 (자료: Lee SR 외, Atrial fibrillation fact sheet in Korea 2024)

요양원에서도 심방세동으로 항응고제를 드시는 어르신을 드물지 않게 뵙니다. 뇌졸중을 한 번 겪으신 뒤 입소하시는 분 가운데에도 원인이 심방세동이었던 경우가 있습니다.

피 묽게 하는 약은 뇌졸중을 얼마나 막아 주나요?

2007년 미국 내과학회지에 실린 분석은 심방세동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시험들을 묶어 봤습니다. 와파린을 드신 분은 약을 드시지 않은 분보다 뇌졸중이 64% 적었습니다. 아스피린 같은 항혈소판제는 22% 줄이는 데 그쳤습니다. 와파린 때문에 늘어난 큰 출혈(머리 안 출혈 제외)은 1년에 100명 중 0.3명 이하였습니다.

약을 드시지 않을 때와 비교해 뇌졸중이 이만큼 줄었습니다 (자료: Hart 외, Ann Intern Med 2007)
약을 드시지 않을 때와 비교해 뇌졸중이 이만큼 줄었습니다 (자료: Hart 외, Ann Intern Med 2007)

그러니까 "아스피린 정도로 바꾸면 덜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따져 봐야 합니다. 아스피린도 출혈 위험이 있는 약인데, 뇌졸중을 막는 힘은 훨씬 약합니다. 약을 바꾸거나 줄이는 결정은 반드시 처방한 의사와 함께 하셔야 합니다.

넘어지실까 봐 약을 끊어야 하나요?

상담실 아드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999년 캐나다 연구진은 65세 이상 심방세동 환자가 넘어지기 쉬울 때 와파린을 계속 드시는 것과 끊는 것을 계산으로 비교했습니다. 대한부정맥학회 2018년 진료지침은 이 연구를 인용해, 넘어져 머리 안에 피가 고일 위험이 약의 이득보다 커지려면 1년에 295번 넘어지셔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하루 한 번 가까이 넘어지시는 셈입니다. 이 숫자는 특정 조건을 넣어 계산한 값이라 어르신 한 분 한 분에게 그대로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주 휘청이시니 끊자"는 판단이 생각보다 근거가 약하다는 것은 보여 줍니다.

넘어질 위험 때문에 항응고제를 끊는 편이 낫다고 계산되려면 1년에 295번 넘어지셔야 했습니다 (자료: Man-Son-Hing 외, Arch Intern Med 1999, 대한부정맥학회 2018 진료지침 인용)
넘어질 위험 때문에 항응고제를 끊는 편이 낫다고 계산되려면 1년에 295번 넘어지셔야 했습니다 (자료: Man-Son-Hing 외, Arch Intern Med 1999, 대한부정맥학회 2018 진료지침 인용)

실제 환자들을 지켜본 연구에서도 결과가 비슷했습니다. 2024년 이탈리아에서 발표된 연구는 NOAC를 새로 시작한 평균 80.8세 심방세동 환자 524명을 2년 동안 지켜봤는데, 그동안 넘어진 분과 넘어지지 않은 분의 큰 출혈 위험이 거의 같았습니다. 한 병원에서 한 연구라 숫자가 크지는 않습니다. 벨기에 전국 자료(2023년)에서는 심방세동 환자 25만 4,478명 중 7.4%가 넘어진 이력이 있었고, 이분들 가운데 새 항응고제(NOAC)를 쓴 쪽이 와파린을 쓴 쪽보다 뇌졸중과 색전증이 적었습니다. 큰 출혈은 두 쪽이 비슷했습니다.

대한부정맥학회 지침은 어르신이 약하고 넘어지기 쉽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고령 심방세동 환자에게 항응고제를 쓰도록 권합니다. 2023년 미국 지침도 출혈 위험 점수 하나만 보고 항응고제를 쓸지 말지 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미국 지침이 항응고제를 오래 쓰지 말라고 한 건 이런 경우였습니다. 넘어지는 원인을 고칠 수 없어서 자꾸 넘어지시고, 그러다 이미 크게 피가 난 적이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 넘어지시는 게 걱정되면 약을 끊기보다 넘어지지 않게 하는 쪽을 먼저 보시는 게 맞습니다. 다리 힘, 밤에 화장실 가시는 길, 신발, 혈압약 때문에 일어설 때 어지러우신지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고 처방한 의사에게 가서 "넘어질까 걱정되는데 지금 약이 맞는지" 여쭤보시면 됩니다.

와파린과 새 항응고제(NOAC)는 무엇이 다른가요?

요즘은 와파린 말고 NOAC라고 부르는 새 항응고제를 드시는 어르신이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비가트란, 리바록사반, 아픽사반, 에독사반 네 가지가 쓰입니다. 2015년 7월부터 뇌졸중 위험이 높은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는 약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약에 건강보험이 되면서 많이 쓰이게 됐습니다.

구분와파린새 항응고제(NOAC)
피검사INR이라는 수치를 정기적으로 재서 용량을 맞춤(심방세동은 보통 2.0~3.0)INR 검사는 필요 없지만 콩팥 기능 검사를 함
음식비타민K가 든 녹색 채소·콩류를 일정하게 드셔야 함음식 제한이 거의 없음
효과가 나기까지약 1주하루 안
판막 질환기계 판막을 단 분도 씀기계 판막을 단 분에게는 쓰지 않음

어느 약이 더 맞는지는 콩팥 기능, 함께 드시는 약, 판막 질환 여부에 따라 의사가 정합니다. 보호자께서는 부모님이 둘 중 어느 약을 드시는지, 그 약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약을 드시는 동안 무엇을 조심해야 하나요?

와파린을 드시는 분은 녹색 채소를 끊으셔야 한다고 알고 계신 보호자가 많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의 와파린 복약 안내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녹색 채소와 콩에는 비타민K가 들어 있지만 피할 필요는 없고, 드시는 양을 들쭉날쭉하지 않게 일정하게 유지하라고 합니다. 평소에 안 드시던 녹즙을 갑자기 매일 드시는 식의 변화가 문제가 됩니다.

같은 안내문은 한약, 건강식품, 인삼과 홍삼, 녹즙을 드시기 전에 의사나 약사와 상의하라고 합니다. 침이나 부항, 근육주사도 미리 말씀하셔야 합니다. 명절에 가족이 홍삼을 사 들고 오시는 일이 많은데, 항응고제를 드시는 어르신이라면 드리기 전에 한 번 물어보시는 게 좋습니다.

치과 치료나 내시경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서울병원 안내는 치과 치료를 받기 전에 꼭 담당 의사와 상의하라고 합니다. 약을 끊어야 하는지는 시술에 따라 다릅니다. 2024년 국제 합의문(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주도)을 보면, 출혈 위험이 낮은 내시경은 와파린을 그대로 드시면서 받고, 출혈 위험이 높은 시술은 며칠 전부터 약을 멈추라고 합니다. 그러니 보호자가 알아서 끊으시면 안 되고, 시술하는 의사에게 항응고제를 드신다는 것을 먼저 알리고 처방한 의사와 날짜를 맞추시면 됩니다.

머리를 세게 부딪히셨거나 심하게 넘어지셨다면 겉에 상처가 작아도 응급실로 가셔야 합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머리 안에서 피가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소변이 붉거나 변이 검게 나오거나, 잇몸이나 코에서 피가 잘 안 멈추면 진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어르신 몸에 생긴 멍을 어떻게 살피는지는 멍 이야기를 다룬 글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Q. 아버지가 자주 넘어지시는데 항응고제를 끊어도 되나요?

보호자가 판단해서 끊으시면 안 됩니다. 심방세동이 있으면 뇌졸중 위험이 약 5배로 늘고, 와파린은 그 뇌졸중을 64% 줄여 줍니다. 넘어질 위험 때문에 약을 끊는 편이 낫다고 계산되려면 1년에 295번 넘어지셔야 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대한부정맥학회 지침도 넘어지기 쉬운 어르신에게 항응고제를 쓰도록 권합니다. 걱정되시면 처방한 의사에게 지금 약과 용량이 맞는지 여쭤보시고, 다리 힘이나 밤길처럼 넘어지는 원인을 함께 줄이는 쪽으로 가시는 게 맞습니다.

Q. 항응고제를 드시는 어르신이라면, 어느 요양원에 전화하든 무엇을 물어보면 좋을까요?

  1. 와파린이라면 INR 피검사를 얼마마다, 어느 병원에서 하게 되는지 물어보십시오.
  2. 넘어지시거나 머리를 부딪히셨을 때 병원으로 모시는 기준과 보호자에게 알리는 시점을 확인하십시오.
  3. 치과 치료나 내시경을 앞두고 약을 멈출지 누가 처방한 의사와 상의하는지 물어보십시오.
  4. 가족이 가져오는 홍삼·한약·건강식품을 어떻게 받아서 확인하는지 물어보십시오.
  5. 약을 거르거나 두 번 드리는 일이 없도록 투약을 어떻게 확인하는지 물어보십시오.

저희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항응고제를 드시는 어르신을 모실 때는 약만 제때 드린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넘어지지 않게 곁에서 일어서시는 걸 돕고, 멍이나 검은 변이 보이면 기록하고, 치과 진료가 잡히면 약을 어떻게 할지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부추꽃더클래식 너싱홈은 간호 인력을 법정 기준보다 넉넉하게 두고 있어서 이런 일을 서두르지 않고 챙길 수 있습니다. 약을 꾸준히 살펴야 하는 어르신이 어떤 돌봄을 받으시는지는 전문요양실 서비스 범위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부추꽃더클래식 너싱홈의 층 복도입니다. 벽을 따라 손잡이가 이어져 있어 어르신이 잡고 걸으실 수 있습니다
부추꽃더클래식 너싱홈의 층 복도입니다. 벽을 따라 손잡이가 이어져 있어 어르신이 잡고 걸으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하실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부모님 약 봉투에서 와파린이나 NOAC 이름이 있는지 확인해 보시는 것, 그리고 있다면 다음 진료 때 "넘어지실까 걱정되는데 지금 약이 괜찮은지" 여쭤보시는 것입니다.

넘어지시는 아버지를 보면 약을 끊고 싶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다치지 않으셨으면 해서 드는 생각이니 잘못된 게 아닙니다. 다만 그 약은 아직 생기지 않은 뇌졸중을 막으려고 드시는 약입니다. 1933년에 소를 싣고 온 농부는 그날 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뒤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서, 지금은 넘어질 위험이 있는 어르신께 이 약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꽤 알려져 있습니다. 혼자 결정하지 마시고 의사와 함께 정하시면 됩니다.


이 글에서 인용한 자료

Link KP, The discovery of dicumarol and its sequels, Circulation 1959;19:97 / Science History Institute, A Study in Scarlet(Distillations) / Lasker Foundation, Bloody good job / WARF, Of rats and men: warfarin becomes world-famous by 1955 / Campbell HA, Link KP, J Biol Chem 1941;138:21 / Butt HR, Allen EV, Bollman JL, Proc Staff Meet Mayo Clin 1941;16:388 / Holmes RW, Love J, Suicide attempt with warfarin, JAMA 1952;148:935 /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Heart attack strikes Ike(2016) / Wolf PA 외, Atrial fibrillation as an independent risk factor for stroke: the Framingham Study, Stroke 1991;22:983 / Lee SR 외, Atrial fibrillation fact sheet in Korea 2024, Int J Arrhythm 2024;25:13 / Hart RG 외, Ann Intern Med 2007;146:857 / Man-Son-Hing M 외, Arch Intern Med 1999;159:677 / Joung B 외(대한부정맥학회), 2018 Korean Guideline of Atrial Fibrillation Management, Korean Circ J 2018;48:1033 / Grymonprez M 외, Int J Cardiol Heart Vasc 2023;47:101223 / Campello E 외(DOAFF), Thromb Res 2024;238:78 / Joglar JA 외, 2023 ACC/AHA/ACCP/HRS Guideline for the Diagnosis and Management of Atrial Fibrillation / 항혈전제 복용 환자 내시경 국제 합의(IDEN), Clin Endosc 2024;57:141 / 삼성서울병원 와파린 복약지도 /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항응고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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